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네모토 토모아키 (문단 편집) == 선수 시절 == || [[파일:external/m.sponichi.co.jp/G20120912004099250_view.jpg]] || [[파일:external/www.kjclub.com/6.jpg]] || || 카프의 달리는 4번타자 시절 || 한신의 철인 시절 || 코료 고등학교[*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에 단골로 출전하고 여러 차례 우승도 차지한 [[히로시마]] 지역의 야구 명문교다. [[노무라 유스케]], [[고바야시 세이지(1989)|코바야시 세이지]] 등 많은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업셋의 상징인 [[사가키타의 기적]]의 제물이 되었던 학교이기도 했다.]-토호쿠 복지대학[* 대학 진학 과정이 다소 순탄치 못했는데, 본래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호세이대학]] 진학을 계획했으나 당시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이 8월에 있는 야구부 입단 테스트를 12월에 있다고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테스트조차 치르지 못한 채 입학에 실패하여 [[재수(입시)|재수]]를 선택했고, 1년 뒤 [[츄오대학]] 진학에 도전했으나 이번엔 츄오대학 야구부 감독이 직접 "재수생은 추천입학제가 없다"라고 말했음에도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이 추천 제도로 뽑힐 테니 괜찮다고 사실과 정반대로 말한 걸 덜컥 믿어버려 또 다시 입학에 실패하면서 결국 일반입시를 통해 토호쿠 복지대학으로 진학했다. 본의 아니게 같은 사람에게 2번이나 속는 바람에(...) 대학 진학이 꼬여 버린 것. 여담으로 불확실한 정보긴 하나 [[https://www.zakzak.co.jp/sports/baseball/news/20120318/bbl1203180805000-n1.htm|zakzak발 기사]]에 의하면 이 당시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입단 테스트도 보았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1년 선배로 [[사사키 카즈히로]], [[야노 아키히로]], 동기로 [[사이토 타카시]], 후배로 [[카도쿠라 켄]] 등이 있는 야구 강호이다. 명문대는 아니고 평범한 지방대학, 지잡대라고 불러줘도 무리없는 수준의 대학이지만 야구부만은 강해서 프로선수를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학교다. 참고로 사사키와 야노는 카네모토와 동갑이지만 상술했듯 카네모토가 1년 재수를 하는 바람에 선배가 되었고, 사이토는 카네모토보다 1년 늦게 태어났으나 [[빠른 생일]]이라 동기가 되었다.]을 졸업하고 1992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초창기에는 타격도 수비도[* 패대기 송구를 자주 해 팀 내에서 별명이 '두더지 잡기'였다고 한다.] 못 미더운 모습이었지만, 강훈련 끝에 기량이 상승해 [[노무라 켄지로]], [[오가타 고이치]], [[마에다 토모노리]], [[에토 아키라]] 등과 함께 1990년대 중후반 카프 '붉은 악마 타선'의 한 축을 이루었다.[* 여담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에는 [[선동열]] 상대로 엄청나게 강했다. 아니, 히로시마 타자들이 [[선동열]]에게 무척 강했다. ] 2003년 [[호시노 센이치]]의 강력한 권유로 [[FA 제도|FA]]를 통해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하였고[* 가네모토는 후배들을 위해 FA 잔류로 히로시마에 남는 길을 선택하려고 했지만,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히로시마는 전통적으로 FA 선언을 한 선수들을 잡지 않는 주의였다.], 이적한 뒤에는 2003, 2005년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는 등 2000년대 중반의 한신 상승세의 일등공신이 되면서 오랜 기간 한신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특히 만 37세의 나이로 .327/.429/.615 OPS 1.044 40홈런 125타점[* 여기에 더해 가네모토 다음 타자로 주로 나오던 [[이마오카 마코토]](현 [[치바 롯데 마린즈]] 수석코치)는 0.279 29홈런 147타점을 기록했다. 더 무서운 건, 이 시즌 이마오카는 만루에서 상당히 강해서 만루 타율이 6할에 49타점이라는 것.]을 기록하며 [[센트럴리그]] [[MVP]]가 된 2005년의 활약이 그 백미였다. 통산 2,539안타, 476홈런, 1521타점, 사이클링 히트, 18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 등 여러 모로 어마어마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안타, 홈런, 타점은 모두 [[헤이세이]] 시대의 일본프로야구 선수로서는[* 범위를 해외 리그까지 넓히면 안타 수로는 넘사벽인 [[스즈키 이치로]]가 있고 [[마쓰이 히데키]], [[마쓰이 가즈오]]도 미일 통산 안타로는 카네모토를 살짝 앞선다. 홈런은 역시 마쓰이 히데키가 미일통산 500홈런을 넘겼고 카네모토의 바로 뒤에 불과 13년간 NPB에서만 464홈런을 깐 용병 [[터피 로즈]]가 있다. [[키요하라 카즈히로]]는 통산 홈런 수가 카네모토보다 많지만 '헤이세이 시대'로만 한정하면 434홈런을 쳤다.] 최다. 젊었을 적에는 발도 빨라서 두 자릿수 도루도 여러 번 기록했고, 트리플 쓰리(3할-[[30-30 클럽|30홈런-30도루]])를 기록한 시즌(2000년)도 있으며, 2001년엔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볼넷 기록 6위[* 참고로 [[http://npb.jp/bis/history/ssb_bb.html|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볼넷]] 탑 10 기록 중 9개는 [[오 사다하루]]의 것인데, 그 사이에 끼어든 선수는 카네모토의 카프 후배인 [[마루 요시히로]](공동 4위, 130볼넷 - 2017년)와 카네모토 뿐이다.]에 해당하는 '''128볼넷'''을 기록하는 등 정말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였다. 한신으로 이적한 이후에는 출루[* 2003~05 3년 연속 센트럴리그 최다 볼넷을 기록했고, 통산 1308개의 볼넷은 [[오 사다하루]]와 [[오치아이 히로미츠]]에 이은 일본프로야구 역대 3위의 기록이다.]와 장타 생산에 주력하면서, 도루가 줄기는 했지만 30대 중반~40대에 접어드는 나이에도 20홈런 이상에 3-4-5급 비율스탯을 찍는 세리그 대표 강타자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2009년 4월에는 3연타석 홈런을 2번이나 기록하기도 했고[[https://youtu.be/ka49R-qMPUU|영상]], 1002타석 연속 무병살타 기록 등 은근히 희귀한 기록들의 소유자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